트레이딩은...
November 29, 2025
작년 이맘때쯤, 장난이라고 하기엔 조금 도가 지나친 디엠을 하나 받았다.
그 내용도, 함께 받았던 사진도 이제는 모두 과거가 되었고, 그 친구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고민 끝에 답장을 건넸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고, 스무 살이던 그 친구는 반복되는 코인 트레이딩 실패로 깊은 절망 속에 있었다.
코인 거래내역을 들여다보니, 왜 계속해서 안 될 수밖에 없었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수십 배 레버리지로 선물 거래를 하며, 100단위 예수금으로 10배, 20배씩 계좌를 키우다가도 과도한 레버리지를 멈추지 못한 탓에 결국 한 번에 계좌가 무너지는 패턴이 일 년 내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현실적인 조언밖에 해줄 수 없었다. 앞으로 계좌가 올라가면 출금을 해두고, 죽어도 여러 번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라고.
올해도 그 친구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제자리에서 헤매는 듯 보였다.
9월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실체가 없는 코인은 운에 너무 휘둘리는 것 같다며, 이제는 주식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나는 신경 쓸 일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트레이딩이라는 것이 배워서 되는 종류의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뒤로는, 이런 요청들은 대부분 단칼에 거절해왔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주식이든 코인이든 결국은 재능이든 감각이든, 어떤 맞는 기질이 있어야 하고, 어차피 너는 코인을 쉽게 끊지 못할 것 같으니, 코인으로 3,000만 원을 만들면 그때 주식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마음 상하지 않게 거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200을 다시 투입해서, 며칠 만에 3,000을 만든 거래내역과 함께...
나는 이제 출금을 해두고, 200으로 다시 10번도 넘게 싸워보라고 권했지만 그 친구는 내가 약속을 지키길 바랐다.
결국 나는 과거, 한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녹화했었던 수십 편의 영상을 그 친구에게 보내주었고, 시장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에, 지금 시장에 맞게 룰만 조정해 준 20분짜리 영상도 새로 찍어 추가로 보내주었다.
내가 한 일은 그게 다였다.
그 친구는 11월에 3,000만 원을 세팅해서 주식을 해보겠다고 했고, 레버리지가 좋은 증권사를 묻길래 미래에셋을 추천해 줬다.
그리고 얼마를 벌면 잘한 거냐는 그의 물음에 사실은 수익만 내도 충분히 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대신 목표를 세워주듯 1,000만 원이라고 답해주었다.
자신이 만약 1,000만 원을 벌면 맛있는 걸 사달라는 말에 알았다고도 했다.
그렇게 11월이 흘렀다.

어제 받은 카톡이다.
이미 이 친구는 24일 월요일에 실현 손익 1,000만 원을 달성했다. 그런데 그 목표금액을 달성하고는 정작 장이 가장 좋던 이번 주에 헤매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목요일에 1,000만 원을 제차 달성하고 금요일에는 매매를 쉬었다고 한다.
이 친구는 내 권유대로 블로그를 개설해서 매매일지도 매일 작성하고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정말 내가 알려준 그대로만 기계적으로 매매를 반복하고 있었다.


원금 3,000만 원에 수익은 1,020만 원(약 34%)
40억을 매수, 매도했으니 원금 3,000만 원으로 한 달 동안 돈을 약 130번 돌린 셈이다.
총 매매 비용(수수료+세금)만 721만 원이 나왔는데 이것은 순전히 내가 지금 시장에 맞춰서 보낸 추가 영상 20분짜리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지수가 급히 많이 올라와 있다고 생각해서 분할매수 없이, 한 타점에서 바로 대응을 하고, 돌릴 때 다시 사라는 내용의 영상이었는데 그 방식 때문에 거래횟수가 늘어난 탓이었다.
어쨌든 이 친구는 주식을 배우자 마자 자주 이기고, 질 때도 세게 안 맞는 구조의 계좌를 만들어냈다.
사실 내가 이 친구의 계좌를 지켜보며 든 생각은...
참 묘한 감정이었다.
이전에 몇 사람을 가르칠 때처럼 공들인 것도 아니었고..
사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었기에..
그러면서도 원리원칙대로 기계적으로 해내는 모습과 스스로 시장을 파악해나가는 일지를 보며..
모차르트의 즉흥 작곡 능력을 처음 목격했을 때 살리에르가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어떤 질투 같은 감정이 발화되기도 했다.
앞으로 이 친구의 계좌는 매매 비용은 확연히 줄어들고, 수익률은 점차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나는 이 친구에게 약속대로 먹고 싶다는 걸 사줬고, 그 자리에서 몇 가지 물었다.
코인으로 며칠 만에 몇 배씩 벌기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성취감이 떨어지지 않냐는 내 물음에 이 친구는 주식은 실체가 있고, 확실히 실력이란 게 존재하겠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다고 했다.
거래를 너무 빈번히 했는데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친구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막노동처럼 보이는 게임을 밤새 하기도 하는데 자긴 전혀 힘들지 않았고 게임처럼 재밌었다고 한다.
이 친구를 보며 든 생각은...
트레이딩은 확실히 재능이라는 것.
어쩌면 애당초 재능이 없었다면 코인으로 몇 배씩 버는 것을 반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친구는 나의 마지막 주식 제자다.
그가 앞으로 맞이할 길 위에 큰 성취와 깊은 성장만이 함께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김세은
